세계화에 적합한 태권도철학 및 정신 구축 필로소피

세계화에 적합한 태권도철학 및 정신 구축

- 한글속의 태권도, 주요 원리 중심

 

01 한국의 CI, 한글과 태권도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이미지 가운데 한글과 태권도가 있다.

정부에서는 1996년에 이미 ‘한국의 문화상징 베스트 10‘을 선정한 바 있다. ‘한글’, ‘한복’, ‘김치와 불고기’, ‘인삼’, ‘설악산’, ‘불국사와 석굴암’, ‘탈춤’, ‘종묘제례악’, ‘태권도’, ‘세계적인 예술인’ 등이 그것이다.

이는 세계화, 국제화 시대의 큰 흐름 속에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올바른 인상을 심어주고자 하는 뜻에서 이뤄진 결과라는 것이다. 한글과 태권도는 우리 문화의 우수함을 세계만방에 전하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는 주제가 된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2001년 ‘한국의 문화 이미지 기획전’을 가졌다. 우리의 문화를 바로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하며, 한글과 태권도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한글은 1443년에 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 고유의 독창적인 문화이다.

어려운 한자 사용으로 인해 일반 백성들이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문자를 만든 것이 바로 한글이다.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글자 구조가 매우 간단하고 단순한 한글은 닿소리(자음) 14개와 홀소리(모음) 10개로 되어 있으며, 이것을 조합하면 어떤 말도 글로 나타낼 수 있다.

한글이 지닌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구조는 21세기의 정보화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태권도는 한국에서 창시된 고유한 전통무예로, 국제적으로 널리 공인받아 전 세 계에 보급되고 있다.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인격을 닦는 무예인 태권도는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방어하는 고차원적 무예이다.

태권도는 시대상황에 따라 국방의 필요성이 높아지면 무예로 수련되었고, 평화가 지속되면 체력단련을 위한 운동으로 그 성격이 바뀌어 왔다. 태권도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시범경기로 채택되었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세계적인 스포츠로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한국의 문화 이미지』, 2001:7)

태권도가 1994년 파리 제10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2000년 시드니올림픽정식종목으로 채택되자, 국내 언론에서는 많은 찬사가 쏟아졌고, 그 가운데 한글에 대한 찬사도 함께하고 있다. 즉 2000년 시드니올림픽경기에서 우리의 태권도는 우리말로 구령하며 경기를 진행하게 됨은 실로 우리 문화가 세계인의 정신 속에 깊숙이 파고드는 경사라고 하였다.

이는 한글속의 태권도가 우리말과 인간의 몸짓이 한데 어울리는 동서양의 만남이라는 소통이 그것이다. 백범 김구는 ‘나의 소원’ 중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의 한 구절을 옮기면,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백범일지』 초간본, 1947년 12월 15일)

한글과 태권도는 단지 한국에서 유래한 것에 따른 문화의 한 맥락이라는 차원을 넘어 한글속의 태권도는 그 중심에 우리의 전통사상과 정신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사상이란 우리 배달겨레의 슬기로운 사상을 말한다. 이에 한글과 태권도의 중심을 이루는 전통사상(음양오행)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차례이다.


02 훈민정음 ‘제자해’ 천지자연의 이치 음양오행

훈민정음을 만든 주요 원리는 ‘제자해’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천지자연의 이치는 오직 음양오행뿐이다. 곤괘와 복괘의 사이가 태극이 되고, 움직이고 멎고 한 뒤가 음양이 된다. 무릇 천지자연의 어떤 생물이든 음양을 버리고 어찌 살 수 있는가? 따라서 사람의 말소리도 모두 음양의 이치가 있건마는 생각건대 사람들이 살피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정음을 만든 것도 처음부터 지혜로써 경영하고 힘써 찾아낸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소리에 따라서 그 음양의 이치를 다했을 뿐이다.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닌즉 어찌 천지의 신(귀신)과 더불어 그것을 부려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훈민정음 해례본』제자해

세종은 ‘제자해’에서는 천지자연의 이치의 보편성을 첫머리로 삼고 있다. 세종은 문자를 만든 근본 원리는 자연의 이치에서 찾고 있다. 천지자연, 모든 생물, 그 가운데 있는 사람의 말소리 모두에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음양오행이다.

음양오행은 음양과 오행의 합성어이다. 음양이란 천지자연에 흐르는 보편 법칙은 특이하고 새로운 곳에 있지 않았다. 동양 사상, 우리가 늘 겪고 있는 삶, 자연 그곳에 있었다. 하루가 밤낮으로 구분되듯 밤(음)이 있으면 낮(양)이 있고, 여성(음)이 있으면 남성(양)이 있다. 하늘에는 해(일)와 달(월)이 우리를 감싸고, 그 밑에는 땅(토)이 당당히 터전을 마련해 준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불(화)과 물(수)과 나무(목)와 쇠(금)가 우리 인간의 삶을 지탱해 주며 자연은 도도히 흐른다. 오행은 천지만물을 이루고 있으면서 온갖 것을 생성하고 변화시키는 다섯 가지 바탕소인 ‘쇠(금), 나무(목), 물(수), 불(화), 흙(토)과 그것이 돌아가는 원리를 말한다. 우리의 삶은 음양오행이라는 주 단위로 매일 생성되고 변화하는 하루 속에서 반복하는 가운데서도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축적해 나가는 것이다.

‘제자해’ 첫머리에 나오는 훈민정음의 핵심 원리가 바로 여기에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행은 닿소리(자음)를 만드는 주요 바탕 원리가 되고, 음양은 홀소리(모음)를 만드는 주요 바탕 원리가 된다. 오행은 크게 상생의 원리와 상극의 원리로 나뉜다. 상생은 서로 어울려 좋은 것이고 상극은 서로 어울려 좋지 않은 것이다. 이 오행의 원리에서 우리는 상극을 버리고 상생을 추구하고 지향하는 삶의 지혜를 자연에서 얻었다. 우주 삼라만상의 숨겨진 이치는 훈민정음의 소리는 물론 글자 모양에 음양오행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훈민정음은 두 가지를 뜻한다.

첫 번째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글자의 이름으로 그 뜻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즉 글’이다. 두 번째는 책의 제목이다. 훈민정음 글자를 직접 만든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훈민정음을 만든 원리와 사용법을 연구하여 상세하게 해례를 붙여 많은 사람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하라’고 명을 내렸다. 이러한 세종대왕의 명을 받들어 글자가 만들어진 지 3년이 지난 1446년 9월 상순에 집현전 학자들이 펴낸 책이 바로 『훈민정음』이다. 『훈민정음』은 현재 국보 70호로 지정돼 있다. 이 책은 서울에 있는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훈민정음』에 다음과 같이 잘 나와 있다.

“천지의 이치는 오직 음양오행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말소리에는 음양의 이치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 옛 사람들이 이를 살피지 못하였다. 이제 단지 그 말소리에 들어 있는 이치를 극진히 하였을 뿐이다.”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이 있어야 한다.”

“천지 사이에 있는 만물에는 제각기 모양과 소리가 있는데 근본은 둘이 아니므로 이치가 통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제자해

우리는 위의 세 문장에서 알 수 있다. 즉 천지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은 소리와 모양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도 천지 사이에 있으므로 말소리를 가지고 있다. 사람의 말소리를 나타내기 위해 글자를 만드는 것이므로 글자를 만들 때에는 말소리에 담긴 이치를 따르면 된다. 세종은 사람의 말소리에는 천지의 이치가 모두 갖추어져 있지만 사람들이 그 이치를 자세히 살피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훈민정음의 글자 모양은 어떤 원칙에 따라 만들어진 것인가? 여러 원칙이 있는 데 그 가운데 하나는 모음(홀소리)을 나타내는 글자의 모양은 자연을 이루는 천(하늘), 지(땅) 그리고 인(사람) 모양의 특징을 기호화한 것이다. 천지인의 기호화는 점, 선, 면으로 표기되는 기호는 ‘‧’ ‘—’ ‘Ⅰ’이다. 이는 하늘소리, 땅소리, 사람소리를 뜻한다.

한글이 만들어질 때, 세종은 이 문자의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정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글’라는 뜻이다. 우리 민족의 글(훈민정음)에 ‘한글’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붙여서 사용한 사람은 주시경 선생으로 알려져 있다. 한글이란 말은 ‘한(韓)나라의 글’에서 비롯됐다고 하며, 여기서 한은 대한제국을 뜻한다. 한글은 ‘큰글’ ‘하나의 글’ ‘하늘의 글’ 이란 의미도 담고 있다. 영국의 학자 존맨은 한글을 가리켜 세상의 어떤 문자보다 완벽에 가까운 문자이며 고전적인 예술작품이라고 했다. 또 일본의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野間秀樹)는『한글의 탄생: 문자라는 기적』(2011)에서 한글이 ‘앎의 혁명을 낳은 문자’라 극찬했다. 한글이 세계 언어학자들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게 고안된 문자 체계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한글은 자연의 모든 소리를 담는 글자이다. 이제 우리는 또 하나의 전통문화인 태권도를 살펴볼 차례이다.

03 태권도: 인간 형상화

태권도(跆拳道)는 1996년 12월 정부(문광부)로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열 가지 문화 상징 (CI; Culture Images)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다.

태권도 이름은 ‘인간의 길’로 표현된다. 태권도인이란 그 길을 걷는 ‘사람’을 말한다. 동양 철학 개념인 성과 명, 체와 용, 음과 양을 인간의 신체에 대립, 설명하자면 태권도는 도가 성이고 태권은 이름이다. 태권은 인간의 몸의 구체적 표현이다. 그것은 세 글자로 구성된 하나의 이름이다. 밟은 태(跆)+주먹 권(拳)+길 도(道)의 합성어이다.

태권도는 도(道)를 모태로 한 손과 발의 쓰임새, 길, 관(觀) 등이 기능성과 심성의 수련에 근원을 두고 있다. 태권도 이름은 ‘태권’과 ‘도’의 만남에 의해 오늘날 보통명사가 되었다. 태권도는 태권의 도이다. 이 명칭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상징성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의미 있는 상징성은 ‘인간’이라는 개념이다. 인간, 즉 사람을 뜻하는 형상의 자구(字句)에서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몸짓”이라는 표현이 가능하다.(이경명, 2002)

그 다음으로 또 하나의 형상적 상징이 가능하다. 그것은 태권도 기술 체계의 단위요소가 되는 ‘동작’ 개념인데, 사람의 몸이 바로 ‘태권도’라는 개념에서 동작을 유추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태’가 의미하는 아래는 ‘서기’를 이루고 ‘권’은 주먹 또는 팔로써 지르기, 치기, 또는 막기를 하게 되고, ‘도’는 내면의 의식을 한곳으로 표출, 집중하는 시선으로서 단위 동작을 생성하게 된다는 상형화적 상징성이 그것이다.

태권도에서 모든 동작 개념은 인간의 몸짓이다. 그 몸짓은 의식적이든 또는 무의식적이든 간에 도구적 수단의 인간적 행위로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태권이 형이하를 상징한다면 도는 형이상의 개념이다. 형이상으로서 ‘도’의 함의는 심오하다. 태권도는 우리 자신, 즉 사람을 대변하는 이름(낱말)이며 태권의 신체적 기능이 도와 만남에서 심성을 기르고 마음 수양을 통해 올바른 인간다움의 길을 지향하는 도덕적 규범이 되고 있다. 막고 지르고 차는 등 다양한 기법적 측면은 그 길잡이가 되는 운동 원리의 법칙성에 따르며 그것은 바른 숨쉬기와 그것을 통해 바른 기운을 배양하게 되며 신체를 강건하게 하는 역동적인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태권도는 ‘인간적, 너무도 인간적 몸짓’이라는 상징성, 그것은 소우주로서의 철학적 행위를 함의한다. 인간은 대우주의 그것을 그대로 축소, 내려 받은 소우주라는 표현은 동서를 막론하고 공유하는 인식이다. 우주란 무엇인가. 동양적 표현에 따르면, 그 대표적인 상징이 하늘땅사람(天地人)삼극이다. 삶, 즉 인간은 땅 위에 직립하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활동하는 ‘세계 내 존재’이다.

사람은 몸과 정신의 상호 작용을 강조하며 땅과 하늘의 중간자로서 인간성의 본질은 정신과 물질 양자의 산물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동양의 전통들이 몸의 특정 부분에 구체적인 정신적 의미를 부여한 것도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삼극(三極)으로서 인간의 형상을 이루는 ‘태권도’는 너무도 인간적인 몸짓으로, 그 몸짓이 인간의 본능적 호신 행위를 바탕으로 한 ‘수양과 절제의 예술’로 승화하여 한 번 내지름과 한 번 걷어참이 바로 철학적 행위로 보는 것이다.


04
천지인 기호 ‘‧’ ‘—’ ‘Ⅰ’

인간적인 몸짓인 태권도 동작은 천지인(하늘땅사람)의 표상이다. 인체의 세 부위는 천지인을 표상하는 동작의 구조이다. 인체에서 머리는 둥근 점(‧)이요 두 발은 벌려 땅을 디뎌 하나의 평선(면, —)을, 그리고 몸통은 바로 세위 입선(Ⅰ)을 이룬다. 이를 기호화하면 ‘‧’ ‘—’ ‘Ⅰ’ 로 표기된다. 이 셋이 모여 ‘하나’(동작)가 생성된다. 천지인, 곧 하늘과 땅과 인간이 하나가 되어 상호 교감하여 살리는 ‘한’론의 의미는 태권도에서의 “인간적 몸짓”인 상징적 기호가 ‘‧’ ‘—’ ‘Ⅰ’인 것이다. 이는 한글에서 모음의 창제 원리로서 천지인 삼태극을 상징하는 ‘‧’(天) ‘—’(地) ‘Ⅰ’(人) 기본음 셋이다. 한글의 글자는 초성 ․ 중성 ․ 종성의 3성으로써 이뤄진다. 음양의 원리를 포함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태권도는 ‘한’(삼태극)론 중심의 음양오행론이라는 민족문화의 구성 원리와도 일치한다. 하늘 ‧ 땅 ‧ 사람 삼극은 삼재라고도 하는데, 이는 한의 몸체로 ‘삼극은 한 몸이다(三極一體). 하나에는 셋을 품는다(執一合三). 셋이 모여 하나로 돌아간다(會三歸一)’ 라는 뜻이 담겨있다.(『천부경』)

‘하나(한)’을 가리키는 것은 ‘도’이고 도는 그 근본을 지킨다. 점 ․ 선 ․ 면은 동작의 내성으로 운동의 원리인데 기호화한 것이다. 동작과 신체의 운동 역학적 원리로서 함수관계를 이루며 ‘‧’ 은 태극점이며 공방의 접점, 회전과 원 운동, ‘Ⅰ’은 직립한 신체에 있는 생명 중추로서 생명선과 중심선, 그리고 ‘—’은 기저면과 목표선에 해당된다. 이 모든 원리가 천지인으로서 동작에 그대로 적용되며 태권도의 동작은 만물의 형체와 자세, 접촉과 상호작용들의 효율적인 기술을 말하며, 사람과 우주의 일치성을 반영하는 자연적 상징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실제로 하나의 동작은 서기(자세)+공방(행위; 氣)+시선(정신) 등 ‘셋이 모여 하나’를 이룬다. 태권도에서 몸을 구성하는 세 부위, 즉 아래, 몸통, 얼굴이 동작을 낳는 요소이며 그 각각의 운동적 요인은 동작의 구성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이는 태권도적 용어이다. 하나의 동작이 동작답기 위해서는 또 다른 외적 요인이 작용하는 것이다. 균형과 조화 그리고 상생의 요인이 그것이다.

동작을 하는 주체는 몸이다. 즉 ‘몸’은 사람의 구체적 표현이라면 사람은 몸의 보편적 표현이라 하겠다. ‘몸’과‘ 사람’은 같은 말이며, 우주(하늘)와 일체를 이룬다. 몸 - 사람 - 우주가 ‘하나(한)’을 이루는 일체적 구조가 ‘동작’의 철학적 표상이다.

태권도를 통해 심신을 단련한다는 것은 바로 철학함이요 방편이 되는 동작의 의미는 바로 몸의 몸짓으로서 가장 구체적이며 인간적 실천 행위이다. 몸은 우리들의 삶과 세상을 담은 그릇인 동시에 그 세상을 해석하고 만들어 가는 주체이다. 나는 몸이며, 몸은 끊임없이 생성함으로써 존재한다. 나의 몸은 앎과 실천함의 장(場)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결과 새로운 몸을 생성한다. 날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몸을 단련하는 수련법은 동작의 원리를 따르고 그것을 좇는 것이다.


05 태권도의 음양오행 원리

세종은 『훈민정음』에서 천지의 이치는 오직 음양오행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말소리에는 음양의 이치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 옛 사람들이 이를 살피지 못하였다고 한다. 천지의 이치는 오직 음양오행뿐이라면 태권도의 이치도 마찬가지이다. 음양오행이란 음양의 원리와 오행의 원리를 줄여 말한다. 태권도 이치도 음양오행에 따라 설명이 가능하다.

태권도 기술체계를 이루는 주체는 바로 ‘동작’개념이다. 동작의 음양이란 공격적 동작과 방어적 동작으로 앞의 것은 양기고 뒤의 것은 음기다. 동작의 주체인 인체에서 음양이 나뉜다. 아래부위는 음이고 몸통부위는 양이다. 동작이 도, 태극이라고 볼 때 하나에서 둘로 나뉘는 동태(動態)적 현상은 양으로 공격과 방어적 동작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동작이 동태라면 품은 동작을 낳는 근원으로서 ‘태극’이라는 정태(情態) 개념이다. 태극이 움직여 양의(兩儀) 즉 음과 양을 낳고 사상(四象), 팔괘(八卦)로 분화, 확장되듯 품은 동작을 낳고 동작은 공방(攻防)이라는 양의 개념이 성립된다.

달리 동작이란 기법을 의미하는데 엄밀히 따져 동작을 동작이게 하는 것은 기(氣)의 전달이라는 것의 이해가 필요하다. 몸이라는 ‘하나’는 바로 ‘기’의 상징과 의미이다. 그 일기(一氣)에서 음양적 원기라는 양의가 생(生)하고 그 두 기가 바로 음기 와 양기의 속성으로 강(剛)과 유(柔), 완(緩)과 급(急), 자세의 고(高)와 저(低), 보폭의 장(長)과 단(短) 등 성질, 즉 사상(四象)을 낳고 다시 분화하여 팔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팔괘란 동작에서 표현되는 서기와 차기, 막고 지르는 각각의 사지(四肢)의 움직임이라는 기운과 변화를 의미한다.

태극은 인체의 허리 개념이다. 허리의 움직임이 팔의 원전(圓轉), 선전(旋轉)을 수반하게 된다. 몸의 팔괘 원리란 바로 기의 원리인데 그 기운은 다시 인력과 척력, 즉 음양으로 구분된다. 그것이 실제로 동작에서 굳셈과 부드러움(강유), 느림과 빠름(완급), 높음과 낮음(고저), 긴 것과 짧은 것(장단)의 배분과 서로 끌어당기는 힘(인력)과 서로 물리치려는 힘(척력)의 작용이 ‘동작’의 여러 변화 현상을 낳는다는 원리로 작용하는 것이다.

태권도에서 오행이란 동작의 수련체계에서 드러나고 있다. 다섯 가지는 14개의 기본동작, 품새, 겨루기, 격파, 호신술 등이다. ‘하나’의 동작이 드러내는 특성이 오행이라는 수련과정, 체계를 이루는 것이다. 이 다섯 과정인 오행은 오늘날 새로운 진화를 보이고 있다. 겨루기는 일찍이 스포츠화로 인해 ‘태권도’를 대변하는 호칭으로 태권도=스포츠라는 등식이 가능하다. 이에 반해 격파는 시범문화로 정착이 된지 오래이다. 품새와 겨루기 구분은 상대가 내 앞에 마주하고 있는가의 있고 없음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다. 때문에 품새는 대자(對自)적 행위이고 겨루기는 대타(代打)적 행위라고 칭하는 것이다. 시범은 태권도의 종합으로서의 기술체계로서 태권도의 예술적 경기를 문화형태로 대중 앞에서 홍보 수단으로 공연되는 것을 말한다.

태권도적 오행은 방위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중앙이 동작 개념이고 동의 목(木)은 품새, 남의 화(火)는 겨루기, 서의 금(金)은 격파, 그리고 북의 수(水)는 호신술이라는 오행의 과정을 말한다. 중앙의 토(土)는 동작 개념이다. 천지자연의 이치는 오직 음양오행이라고 본 세종의 혜지가 이렇듯 태권도에서도 주요 원리로서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오행은 복장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수련 시 입는 수련복을 도복이라 하는 데 도복은 바지저고리를 말한다. 바지는 음, 저고리는 양으로 그 둘을 잇는 띠는 위계로서 오방색으로 나뉜다. 복장에서도 절묘한 음양오행의 이치가 적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더 많은 사례로 설명이 가능하다.

06 태권도, ‘한’ 철학과 홍익인간 정신

천지인 삼극은 단순히 문양이 아니라 여기엔 한국 고유의 철학이 담겨 있다. 음양과 오행도 하나, 즉 한에서 파생된 것이다. 둘과 다섯은 하나에의 근원적 이치에 말미암는다. 둘이 모여 하나가 되고 다섯이 모여 하나가 되는 이치, 그리고 천지인 셋이 하나가 되는 이치는 결국 하나에서 모든 것이 파생되는 것으로 이는 인간이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한은 도, 태극 등 같은 뜻으로 순우리말로서 음양오행의 상위개념이다.

모든 만물은 태극에서 나와 하나로 돌아간다. 품새 태극에서 닦음이 시작되고 하나로 돌아감 곧 일여로 끝난다. 태극은 하나로서 움직여 양의, 즉 음과 양을 낳는다. 품새는 음양으로 유급자 품새와 유단자 품새로 나뉜다. 시작이 태극(太極)이고 끝남이 일여(一如)이다.

일여란 마음(정신)과 몸(물질)이 하나이면서 원리는 오직 하나뿐이라는 높은 천리를 말하고 이것은 점이나 선이다 원이 하나가 된다는 뜻을 나타낸다. 태권도 수련의 완성은 모든 기법과 동작이 모양이나 운용을 다르게 배우고 행하지만 궁극에서는 합쳐지면 나아가 정신과 동작이 일체가 되는 깊은 무예의 진리가 바탕에 깔라져 있는 품새가 일여이다.(『태권도교본』 국기원)

음양오행도 다르지 않다. 그 근원은 ‘하나’로부터 말미암는다. 태권도 주체는 사람 인(人)이다. 인중(人中)사상은 인간의 최고 변화를 의미한다. 사람은 천지와 더불어 셋을 이룬다. 사람은 하늘의 양성만을 가져서도 안 되고, 땅의 음성만을 가져서도 안 된다. 음양을 다 가져야만 완전한 인격이 될 수 있다. 하나, 즉 ‘한’은 태권도 주체사상이다. 태권도인의 정신적 뿌리로서 그 뜻은 크다. 높다. 밝다, 환하다. 음양이 하나이듯 전체적으로 하나라는 의미가 다양하다. 일체성의 뿌리는 전체적으로 하나라는 ‘한’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한’철학의 중심 내용이 있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라고 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심신과 천인이 서로 나눠지지 않은 일체성과 조화성을 말하는 것으로 곧 ‘한’의 철학 사상인 것이다.

‘한’철학의 중심인 ‘한’은 존재론과 천지 만물의 근본적 실제로서 시원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태권도 수련은 바로 ‘한’의 철학적 신체론으로 천지인 삼극이 하나이며 ‘한’의 체계와 본질을 터득하는 것이다. ‘한’ 사상은 조화성을 내포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커다란 하나의 입장에서 다른 부분들을 포괄하고 있다.

태권도의 원리는 ‘한’의 철학적 원리와 사상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어 모든 동작은 삼극 곧 ‘한’(하나)으로 표현되고 변화(움직임)와 생성이 기(氣, 힘)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태권도의 ‘한’ 철학은 ‘한’의 주체로서 소우주인 인간이 대우주인 천지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태극(


최홍희, 그가 남긴 3대 의문을 풀다 테마

최홍희, 그가 남긴 3대 의문을 풀다 -연재 최종회

연재 6회로 마감하려다가 다시 이어 밝혀둬야 할 내용이 있을 것 같아 최홍희의 저서, "태권도 창시자 최홍희 회고록, '태권도와 나' 1수난의 땅 나의 조국"에서 인용한다. 

-오도관 창설 관련(338~339쪽);
 우리 사단은 1주년 기념식을 마치고(1954. 9 중순)얼마 안지나 송요찬 장군이 지휘하는 제3군단에 배속되어 용대리에 본부를 두고 동해안을 포함한 동부 전선 일대의 작전 책임을 맡게 되었다. 나는 먼저 이곳에다 국제태권도연맹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오도관을 창설해 앞날 전군에 보급할 수 있는 사범양성에 박차를 가했다.

 물론 아직도 당수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그 사이에 동작도 많이 개선됐고 남태희 사범의 도움을 얻어 화랑 및 충무형을 완성함으로써 점차 태권도의 토대를 구축해 나아갔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로서 오도관의 오도는 공자가 <나는 오직 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야(吳道一以貫之)>라고 한 말 하고도 비슷한 나의 성격과 내가 연구하는 태권도를 전 세계로 뻗치겠다는 포부를 뜻하는 것이다.

 나는 오도관에서 키운 제1기생 중사 김수기 3급과 또 한 명의 3급 이성가 장군의 지휘하에 있는 제7사단의 제2기생 하사 이응삼 4급과 이화섭 4급을 백인엽 장군의 제9사단에 각각 파견하여 전군에 보급한다는 첫 신호를 올렸다.

 1859년말 부산 동래에서 손덕성 2단의 입회 하에 그의 사범 이원국 관장하고 약속한 대로 당수도 청도관을 인수하여 나의 지휘하에 두었다.

 이로써 불원간 전국을 태권도화 시킬 수 있는 근거지가 마련된 셈인데 군인신분으로서 일반 사회적 직책을 가질 수 없는 관계로 내 자신은  명예 관장을 하고, 관장에는 손덕성을 시켰다. 그러므로 단증에는 반드시 나의 도장이 찍여져야 함은 물론 모든 주요 안건은 내 승인을 받아야 했다.

-태권도를 창시하다(343쪽~ )
 태권이 택견 하고 비슷한 발음이므로 역사적인 연결을 지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고 설명하니 그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그련데 미창사장 유하청 의원이 "최 소장이 제출한 명칭을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그러나 하나의 명칭을 개명 공포한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이니만큼 즉석에서 결정한다기 보다는 이에 대한 사적 고찰과 학리적 연구가 필요하니 일단 사학가한테 의뢰하여 단시일 내에 사적 고찰을 마치고 그 기간 내에 각자 더 좋은 명칭을 제출하여 함께 대통령께 올려 명몋 공포토록 하면 좋겠습니니다"라고 발언했다. 

그런 까닭에 조 부의장은 결의사항으로 학적  증거를 수집 연구하기 위해 3인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그해(1955) 11월(12월-필자주) 30일까지 수집 연구 사실을 고문들에게 개별적으로 통지한 다음 각 고문들은 1주일 내에 그에 대한 의견과 대통령에게 올릴 날짜를 제의한다는 형식에 불과한 부대조건을 달았다.(최홍희가 주장하는 회의날짜는 1955. 4. 11이다. 그렇다면 그해 11월 30일 이라는 논리는 모순이다. 회의 일짜는 회의 후 참석한 11명의 사진에 박힌 4288(1955). 12. 19 대한당수도 청도관 제1회 고문회를 왜곡한 것에 불과하다-필자주)

 이로인해 약간 브레이크는 걸렸지만 하늘이 도왔다고 할까 천만다행으로 나는 이 무렵 이 박사(이승만)의 신임을 톡톡히 받고 있는 터라 크게 문제될 것이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폐회가 선언되자 모두들 나에게 축하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분명 유 의원(유하청)의 제안에 관계없이 태권이 통과됐다는 재확인이었다.

결국 그들은 속담에 '먹은 소 똥눈다'고 내가 원하는 태권도 세 글자를 받아 내는데 성공했다. 이 휘호가 발표됨으로써 태권도는 누구의 모략도 받을 수 없이 공식 명칭으로 떳떳이 사용되었다. 이 같이 나는 태권도를 창시하기위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과 술자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태권도가 탄생한 1955년 4월 11일 저녁 내 기쁨이란 그 어떤 말이나 글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다.(346쪽에 사진 아래 표제는 '태권도 명칭제정위원회(좌로부터 3번째가 필자). 정작 이 대통령의 '태권도 우남' 휘호가  보이지 않는다. 1959년 10월 '태권도교본'에 게재된 것이 정보기관으로부터 회수, 폐기되었다는 연재3 참조-필자주)

 필자주: 회고록 '태권도와 나'(전 3권)는 1997년 11월 29일 발행 도서출판 서울:사람다움 
             최홍희의 마지막 저서이며, 요약본 '태권도와 나' 단행본(607쪽)이 2005년 8월 15일 서울:도서출판 길모금에서
             발행.

            요약본 '태권도와 나' 에필로그에서 최홍희는 이렇게 썼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 세계는 태권도가 두 개의 조직으로 갈려져 있다. 하나는 내가 창시한 태권도로서 국제태권도연맹(ITF)이요, 다른 하나는 세계태권도연맹(WTF)이다. 태권도는 언제고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 배달민족의 얼과 슭기가 담긴, 동양철학이 바탕이 된 우리 순수 무도 본연의 기술과 이념을 후세에 바로 전하기 위해서도  두 개의 태권도 존립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후기
             "2002년 2월 초순 총재님께서는 국내병원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암 수술 받기가 힘드시겠다는 판단 아래 북한행을 단행하셨습니다. 북한에 도착하신 지 일주일 후 암 대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생략) 3월 28일 평양 의료진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덴버로 출발하여 도착하신 것이 4월 5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남북의 태권도가 통합되어 장차 올림픽경기에도 유일팀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셨습니다. 총재님께서는 이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분은 현 북한 IOC 위원이며, 국제무도경기위원회 부위원장이며 국제올림픽에 친구가 많은 장웅 선생이라고 생각하시고 그를 차기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로 추천하셨습니다.

             또한 총재님은 해외에서 뢀약하는 제자들과 ITF 간부들을 평양으로 부르셨습니다. 총재님은 이들의 손을 일일이 잡고 각자에게 다정하게 사랑한다고 말씀을 하셨으며, 또 앞날의 태권도 발전에 더욱 더 기여해 달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이들을 만나보신 후 다음 날 저녁 여덟시에 총재님은 편하신 마음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2002. 6. 15) - 유가족 한 정 일

             태권도 명칭 창안과 보급 발전에 삶을 바친 최홍희는 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발자취는 대단하다만 그가 남긴 역사적 기록은 거짓으로 점철돼 후학들에게 많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 점이 못내 아쉽고 두고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이 큰 흠으로 남는다.

   결론: 이승만 대통령의 휘호 "태권도 우남"은 1959년 <태권도교본> 초판에 실려있을 뿐, 그 이후 어느 저서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휘호가 내려진 날을 1955. 4. 14이라고 하다가 뒤의 저서에서는 명칭제정위원회의 날짜로 둔갑하고            있다.  초기 저서에서는 '명칭제정회의'라고 하다가 뒤에는 '명칭제정위원회'로 바뀌고 있다.
            1955. 4. 14일은 1955. 12. 19의 왜곡이다. 명칭관련 회의는 4288(1955). 12. 19 대한당수도 청도관 제1고문회             이름으로 열린 것이다.
             
           이교윤의 <글로벌태권도>(2008, 초판) 62쪽에 이 대통령각하 휘호( "跆拳道 雩南" ) 및영남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태권도의 역사철학적 탐구>에 게재돼 있음이 실로 어처구니 없는 처사이다. 부끄러운 역사의 한 면모이다.

최홍희, 그가 남긴 3대 의문을 풀다

최홍희, 그가 남긴 3대 의문을 풀다 -연재7

연재6까지 이르는 과정에 최홍희의 의문 3가지를 풀고자 그의 저서에서 주요 관련 내용을 발췌하였다. 연재 순으로 찬찬히 정독하고 비교함으로써 대부분의 의문이 해소되는 실마리를 제공한 셈이다. 워낙 그는 여러 저서에서 일관성 없는 기록에 의해 더욱 독자로하여금 의문을 갖게 하였던 것읻다.

그러나 관심을 갖고 무엇이 거짓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가를 알고자 노력한 독자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듯 하다.
키워드는 연재 2와 연재 3에서 무엇이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즉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태권도 우남' 휘로가 사실이 아니기에 초판(1959)이 나오자 관계 기관에서 모두 회수, 폐기한 것이다. 그 다음 해(1960)년 재판에는 위조한 '태권도 우남' 휘호가 삭제되었고, 시범을 보인 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 및 '우남' 형 등이 삭제됐다.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태권도' 명칭 재가는 없었다.

명칭관련 회의를 가진 날짜는 정확히 말해 1955년 12월 19일 대한당수도 청도관 제1회 고문회의 모임(서울 종로 국일관)에서 논의된 것이다.
이 날짜의 근거는 회의를 마친 후 11명이 고문회위원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 증명하는 것이다.  이 사진은 사실적이기에 최홍희의 여러 책에 빠지지 않고 게재하고 있다.

최홍희는 이 날짜를 연재 5/6에서 밝혀 있듯, 1955. 4. 11 로 기록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1955. 12. 19  명칭 관련 첫 모임을 갖고 이 대통령의 재가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한 논의에 따른 조처로, 그 다음해(1956) 1월 중 두 차례 시도한 결과 '태견'을 하라며 거절당했다. 그 이후 3인 소위원을 구성, 최종적으로 1월 30일 방문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날 새벽에 사건 터졌다. 김창룡 특무 대장의 저격사건이 발생했다. 그로인해 면회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편 당시 명칭 위원회에 참석했고 대통령으로부터 명칭 승인을 받기위해 경무대에 갔던 3인 중 한 명이었던 손덕성은, 그날 김창룡 특무 대장의 암살로 면담이 취소되었다고 증언했다. 
최홍희는 대통령 재가 관련 김창룡 암살 사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그때 그런 일이 있긴 있었는데 ,' 하고 여운을 남기면서, 명칭 제정문제는 자신의 자서전에 적힌 그대로라고 일축했다('한국무술 미 대륙 정복하다' 한국학술정보(주), 2007:92쪽)

그 사건 이후 재가 관련 시도는 전혀 할 수 없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태권'명칭 회의일짜, 즉 1955. 12. 19을 1955. 4. 11 로 왜곡한 것이다.

최홍희가 태권도 명칭제정에 기여한 공로는 물론 그의 삶이 바로 태권도이엉ㅆ듯, 태권도의 발전에 큰 공적을 남겼다는 것에 어느 누구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의 일생은 무인이었으면서도, 태권도사에 지울 수 없는 '태권도' 명칭을 둘러싸고 그릇된 세 가지 기록을 남기고 있다.

또 하나는 '국기태권도' 관련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기태권도 1970. 3. 20 대통령 박정희" 휘호가 내려졌다. 최홍희는 훨씬 앞서 '국기태권도'를 언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1965년 10월 4명의 선수를 인솔하고 '구아 태권도 친선사절단' 여권수속 시 여권과장과의 대화에서 "태권도가 국기"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국기태권도 구아친선사절단'이라는 공식명칭으로 해외 원정을 가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당시 김포공항 출국 시 기념사진에도 '태권도 구아사절단'이라고 기재돼 있다.
<태권도 구아사절단>은 단장 최홍희 단원 4명(권재화, 박종수, 한차교, 김중근)으로 구성되었다.

태권도백과사전 1권 252쪽에는 사진이 게재돼 있다. 그 한장의 사진에는 필자도 포함돼 있는 데, 그것은 권재화 친우를 환송하러 김포공항에 갔던 것이다. 사진 열 표제는 '국제태권도친선사절단 1965년 3월'이라 적혀 있다.(3월 출국예정이 변경돼 그해 10월에 출국했다.-필자주)

 .

최홍희, 그가 남긴 3대 의문을 풀다 테마

최홍희, 그가 남긴 3대 의문을 풀다 -연재 6

최홍희의 "태권도백과사전"은 초판 1983년, 수정재판 1987년, 제3판 (조선문판) 1990년에 나왔다. 인쇄: 조선 평양 외국문종합출판사 인쇄공장, 전 15권으로 구성돼 있다.

제1권 241쪽 저자소개 글에서 관련 내용을 옮겨본다.

- 1954년에는 그가 수년간 연구하고 집필한 <정보일반론>책을 발간했고 또한 태껸과 가라데를 함고하여 새로운 무도인 태권도의 기술적 기초를 완성한 동시에 오늘날 국제태권도연맹의 모체라고 볼 수 있는 오도관을 창설했고 그 당시 사회의 도장으로 가장 크고 전통있는 청도관의 명예관장으로 추대되어 청도관을 직접 지휘했다.

- 특히 그해(1955) 4월 11일 저자는 사계에 조예있는 인사와 사학가 그리고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명칭제정위원회를 소집하여 각자가 무기명으로 제출한 여러가지 명칭 중 저자가 제안한 태권 두 글자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칭제정위원회: 유하청(미창사장), 손덕성(청도관 관장), 최홍희 소장(3군관수사령관), 리형근 대장(련합참모츼장), 조경구(국회부의장), 정대천(국회의원), 한창환(정치신문사자장), 장경록, 홍순호, 고공래, 현종명. 1955년 4월 11일

 유사장: 결의사항으로 사적 증거와 학적 자료수집을 위해 3인소위원회를 걸성학고 금년 12월 31일까지 완료하여 각 위원들께 개별적으로 통지한 다음 이 통지를 받은 위원은 일주일 안으로 그에 대한 해답과 대통령각하의 재가를 얻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필자주: 대통령(이승만)재가와 태권도 휘호 관련 언급이 전혀 없다.


-  1959년은 민족무술인 태권도가 후리 나라 국경을 넘어 처음으로 타국에 소개된 력사적인 해였다. 즉 태권도의 아버지인 그는 전군에서 가장 우수한 19명의 유단자로 구성된 <국군>태권도시범단을 인솔하고 원남과 대만을 순방하면서 아시아대륙에 태권도의 씨를 뿌렸다. (생략) 도한 1959년에는 그가 다년간 희망하던 대한태권도협회를 창설하였다.

- 도한 이해는(1965년) 태권도지침의 기초가 된 영문태권도교본을 발간한 해였으므로 태권도력사상 또하나의 의의깊은 해라 하겠다.

- 1962년 장군은 말레이시아의 초대대사로 부임되었는데 역시 대사의 직책보다 오히려 태권도의 사도로서 정열을 기울여 동남아전국에 태권도의 완전한 기틀을 마련했다.

최홍희, 그가 남긴 3대 의문을 풀다 테마

최홍희, 그가 남긴 3대 의문을 풀다 -연재 5

최홍희의 세 번째 교본은 1965년 '태권도지침' 서울: 정연사에서 발행되었다.

이 책의 서문은 국제태권도연맹 명예총재 김종필이 썼다.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사도의 권위자인 초홍희 대사가 그의 30녀 년에 걸친 생생한 체험과 고심의 결정으로 "태권도교본" 영문판 "TAEKWON-DO"에 이어 이번에 태권도에 관한 과학적 체계를 세워 기술과 이론을 집대성한 "태권도 지침"을 세상에 낸놓아 국미체위 향상에 이바지 하게 됨을 반가워 하는 바이다."

자서에서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지난번 본인이 인솔한 '국기태권도 친선사절단'의 구라파, 중동, 아프리카 및 아세아제국의 순회를 계기로 태권도가 더 한층 국제적인 묻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국제태권도연맹 총재 및 대한태권도협회 명예회장.

차례에 따르면, 제5편 형(型) 12. 창헌류  모두 20개(천지, 단군, 도산, 원효, 율곡,, 중근, 퇴계, 화랑, 충무, 광개, 포은, 계백, 유신, 충장, 을지, 삼일, 고당, 최영, 세종, 통일), 13. 소림 및 소령류 10개(평안, 발색, 연비, 암학, 공상군, 진정, 철기, 십수, 반월, 자은).

최초의 영문판 교본: 1965. 서울, 304쪽. 1966년 육군태권도부에서 발간한 '태권도교본'과 같은 내용임.

그 다음으로 1972년 5월 10일 "태권도교서" 서울:정연사 초판 518쪽
이 책은 비로서 독립된 "태권도교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부터 최홍희가 집필 연구하기 시작한 15권의 방대한 분량의 "태권도백과사전"(전15권)은 1983년 초판, 1987년 재판, 1990년 3판을 거치면서 이 세상에 출간하게 된다.

각권 350쪽 정도의 이 백과사전은 영문판이 먼저 출판되고 3년 뒤, 우리말로 번역해서 출판하게 되는 데, 출판은 북한의 '조선평양외국문 종합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태권도백과사전의 출판 배경에는 당시 북한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생전 최홍희는 증언한 바 있다. 책에 들어갈 사진 구성을 위해서 총 3만장의 사진을 찍었으며, 이것은 북한 전역에서 1년동안 사용된 필름의 양이라고 한다.

전15권 태권도백과사전 출판 후 종합본 발간:
768쪽 분량으로 구성된 종합본 태권도교본, 한글판은 1989년 역시 북한에서 발간되었으며 9번에 걸쳐 수정, 인쇄를 거듭하여 1998년 완성되었다.

영문판 종합본은 한글판 출판 1년 전인 1988년 초판을 거쳐 재판, 1992년 3판, 1995년 4판을 거쳐 출판되었으며, 태권도 종합본은 세계 6개어로 번역 출판해서 보급되고 있다. (독일어, 러시아어, 일본어, 스페인어, 영어 조선어)

형에서 틀Tul로 바뀐 배경과 연도:
종전의 型에서 틀로 바귄 배경도 최홍희의 생전 증언에 의하면, 폴란드 세미나 중에 중근형이란 말에서 형이 兄으로 ㅌ틀리는 것에 착안하여 최홍희가 직접 '틀'로 바꿨다고 한다. 틀의 명칭은 1974년판 태권도교본에서부터 영어로 Tul로 표기된 것을 확린할 수가 있다.(정순천, 2003, 5. 19)

"태권도교서" 정연사, 1973 간, 507쪽:
간기면이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1997년 6월 23일 김봉식 소유의 "태권도교서" 를 복사한 사본을 소지하고 있다.

서문에서, "마침내 1955년 4월 11일 개최된 '명칭제정위원회'에서 본인이 제출한 '태권도'가 만장일치로 가결됨으로서 여태까지 구구각각으로 불리워오던 이름을 태권도로 단일화하게 되었다. 4월 11일을 태권도의 날로 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통일된 이름에다 새로운 기술과 진보된 이론을 자랑하는 이 무도를 전 세계에  보급함으로서 (생략).

이 책은 1958년과 1965년에 발간한 본인이 저서를 보강하고 그 당시 지면관계로 수록치 못하였던 부분을 포함한 것이므로 초보자로부터 고단자에 이르기가지 필요한 전체의 기술을 망라한 것이다.(이 대통령 재가 및 태권도휘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음이 특이-필자주)

504쪽 저자소개에서:
507쪽에 '대한당수도 4288. 12. 19 청도관 제1회 고문회' 글씨가 한문으로 사진에 인화돼 있음. (4288년은 단기이며 서기로 환산하면 1955년에 해당-필자주).

사진 아래에 명칭제정위원회 11명의 이름이 적혀있고  1955년 4월 11일이라고 적고 있음.

또 509쪽에 "1965년 예비역 장군인 최대사는 (최홍희) 국기 태권도 친선사절단을 인솔하고 서독, 이태리, 터어키, 아랍공화국, 말레이시아. 그리고 싱가폴 ㄷ을 순회하면서 태권도를 시범하는 한편 태권도협회를 조직하여 국제태권도연맹ㅇ을 창설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글 주식회사 고림상사 대표 박성화(국제태권도연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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